"사랑 따윈 개나 줘버려"…독기 품은 구광모의 LG [안재광의 대기만성's]

입력 2022-09-28 13:45   수정 2022-09-28 16:27


▶안재광 기자

LG를 사랑 까진 아니어도,
제 주변에 LG 좋아하는 사람 지금도 엄청 많아요.
대기업인데 이미지가 독특하게 좋아.
근데 사람들한테 LG 좋아하는 이유를 대라면 자기들도 몰라요.
제가 이유를 굳이 꼽자면,
남 모르게 선행 많이 했고,
오너들은 그 흔한 경영권 분쟁 하지 않았고,
병역 의무까지 성실하게 다 마쳤고,
세금 안 내려고 꼼수 안 부렸고.
생각해 보니까 이유가 많네요.


심지어 노트북, 스마트폰 같은 신제품을 내놓고
너무나 겸손하게 마케팅을 해서,
소비자들이 좋은 점을 일부러 찾아내서 입 소문을 내주는
정말 이상한 회사에요. LG는. 좋은점에서.


LG는 정치권에 줄 대서 크게 특혜 받은 것도 없어요.
오히려 잘 하고 있었던 반도체 사업을
정부가 내놓으라고 해서 빼앗긴, 뼈아픈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그 뺏긴 사업이 지금의 SK하이닉스 입니다.
하이닉스 잘 되면 LG가 배아플 만 하죠.


LG는 경쟁자인 삼성과는 다르게 1등 우선주의도 아니었어요.
2등 하더라도 서로 얼굴 붉힐 일 만들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을 했습니다.
오죽하면 경영 이념이 '인화' 엿겠어요.
그랬던 LG가 요즘 많이 바뀐것 같아요.
갑자기 1등, 선두, 선점 이런 단어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사랑, 인화 이런 말은 이제 안 해요.
대체 무슨일이 있는 것인지. 오늘은 독해진 LG가 주젭니다.


LG의 모태는 락희화학, 지금은 LG화학입니다.
LG 그룹 내에서 LG화학이 큰 형님이죠. 돈도 많이 벌고. 역사도 오래됐고.
그런데, 지난해 엄청난 일을 저지릅니다.
LG화학의 알짜, 아니 핵심 사업인 배터리를 물적분할 했어요.
이게 뭔 소리냐면,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을 따로 떼어냈다는 말과 같습니다.


더 쉽게 말해 볼까요. 코카콜라가 내용물인 콜라는 빼고,
앞으로 페트병만 만들겠다, 뭐 이런 식입니다.
이것 때문에 LG화학 주주들이 난리가 났었습니다.
주가 폭락하고, 주주들 항의하고.


오죽했으면 이 일을 계기로 한국에선 물적분할 아예 못하게 하자,
이런 말이 정치인들 입에서 나올 정도였습니다.
아, 상상도 못했어요. LG화학이 국민 '빌런'이 될 지.
아마 예전 LG 같았으면, 이런 식의 분할은 꿈도 못 꿨을 텐데.
갑자기 얘네 왜 이래. 뭐 잘못 먹은거 아냐?


LG가 갑자기 이런 건 아니고, 그 전에 LG의 DNA가 좀 바뀐 일이 있었죠.
구본무 회장이 2018년 돌아가신 뒤에,
구광모 회장이 총수가 됐는데,
구광모 회장 나이가 당시 마흔이었어요.
근데 이 분이 원래 LG 황태자가 아니었어요.
구광모 회장의 아버지는, LG 총수였던 구본무 회장이 아니라,
구본무 회장의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입니다.
근데 구본무 회장 외아들이 사고로 세상을 떠나니까,
동생의 아들인 구광모 회장을 양자로 들였어요.
LG는 경영권은 무조건 장자가 승계한다
이런 불문율 같은 게 있거든요. 이 룰을 잘 지킨 덕분에 지금껏 경영권 분쟁도 없었죠.


어쨌든 어린, 아니 어린건 아니고 젊은
구광모 회장이 총수가 된 뒤에 LG가 정말 완전히 바뀌었죠.
상징적인 게, TV 사건이 있었어요. 이게 사실 별 건 아니었는데 뭐냐면.
삼성하고 TV 기술 놓고 2019년부터 싸우는데,
쉽게 말하면 삼성이 밀었던 QLED TV, 이거 형편없다.
LG의 OLED는 삼성 QLED 따위와 비교하지 마라
뭐 이런 거였습니다.
근데 이게 뭐가 중요해.
소비자 입장에선 그냥 적당히 괜찮고 싼 TV 있으면 되죠.
실제로 눈으로 봐선 크게 차이도 없어요.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게 LG가 먼저 싸움을 걸었다는 점.
옛날 LG 같았으면, 아마 이렇게 까진 안 했을거에요.


아까 말한 LG화학의 배터리 물적분할도 만찬가집니다.
LG가 내부적으로 분할을 검토 할 때,
주주들 반발을 고려하지 않는 건 아닌데,
'반발보다 더 중요한 게 타이밍이다'
이런 판단을 사업적으로 한거죠.
전기차 판매가 확 늘어나니까, LG에 배터리 주문이 밀려들었거든요.
근데 이 주문을 감당을 못했어요. 공장이 부족해서.
그래서 LG가 생각해 낸 게 배터리 사업을 분사해서 증시에 상장 시키고,
상장할 때 받은 돈으로 확 다 투자해서 골든타임을 확보하자.
뭐 이런 계산을 한 것이죠.


LG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주주들의 반발이 있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서 결과적으로 보니까 LG 그룹 전체적으론
꽤 잘 한 선택이란 평가가 나옵니다.
분할 해서 떨어져 나온 배터리 법인이
지금 한국 증시에서 삼성전자 다음가는 시가총액 2등 기업이 됐고,
상장한 돈으로 투자도 엄청 해서
2022년 6월 말 기준 수주 잔고가 300조원을 넘었습니다.


또 졸지에 페트병 회사 된 LG 화학은
배터리에 들어가는 양극재 같은 소재를 공급해서,
첨단 소재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죠.
양극재가 배터리에 들어가는 소재 중에 가장 비싸거든요.


LG화학이 분사 뿐만 아니라
TV 하고는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싸움을 SK에 걸었죠.
SK이 LG에서 기술자들 빼가고,
기술도 막 가져가고 하니까,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합니다.
한국에서도 물론 소송을 했는데요,
이런 지식재산권 위반은 미국의 처벌이 엄청나게 세거든요.


LG가 얼마나 독하게 했냐면요,
'SK가 아예, 배터리 사업 못하게 하겠다.'
이런 말을 공공연히 하고 다녔어요.
오죽하면 정세균 전 총리까지 나서서
'한국 기업끼리 싸우지 말고 원만하게 합의해라'
하고, 중재를 하기도 했습니다.


결국에 SK가 LG에 돈 주고 끝내기로 했는데요,
주기로 한 돈이 무려 2조원입니다.
그것도 원래 합의 안 해준다는 것을,
미국 백악관 까지 나서서
'너네 이딴 식으로 계속 싸우면 미국에서 사업 못한다' 하고 경고를 줘서,
미국에 의해 사실상 합의를 강요 당해서 한 것이죠.
아무튼 엄청 과감해졌어요. LG가. 싸움을 마다하지 않아요.


사람 쓰는 것도 과감합니다.
현재 LG그룹의 2인자라 불리는 사람이
LG 에너지솔루션 대표인 권영수 부회장인데요,
권영수 부회장이 캐릭터가 진짜 확실하거든요.
너무 할 말 잘 하는 스타일어서,
'저 사람은 진짜 LG 사람 같지 않다'
이런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금방 나갈 사람 같았죠.
LG전자 부사장 시절에 이분이 뭘 했냐면,
CFO, 그러니까 최고 재무책임자를 했는데,
자기들의 전략적 실수가 뭐였다, 뭐는 완전 잘 못 했다,
이런 말을 투자자들 다 듣는 기업 설명회에서 한거에요.


이건 자기들 스스로 반성하는 의미도 있지만,
자기 상사인 사장, 부회장, 회장을 싸그리 욕 먹이는 것이 거든요.
그런데 이런 사람을 구광모 회장은 그룹 2인자로 씁니다.
SK에 소송 걸어서 사업 못하게 하라고 한 것도
권영수 부회장이 뒤에서 종용했다는 말이 있죠.


그럼 구광모 회장은 이렇게 독하게 싸우고, 독한 사람 써서
결국 뭘 하고 싶은가 .
사실 우리가 궁금하게 여겨야 하는 건 그것이죠.
결론적으로, 전기차 시대에 삼성 잡고 한국에서 1등 먹겠다. 이런 그림 같습니다.
자, 현재 LG의 주력 사업을 보면요,
크게 전자, 화학, 통신인데요.
전부 전기차 관련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세계 1등 다투는 전기차 배터리는 말 할 것도 없고,
LG전자는 전기차의 엔진 격인, 구동 모터 분야에서
이미 세계 최정상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마그나란 해외 기업과 합작해서
아예 전기차 구동체제 전체를 다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LG이노텍은 전기차에 들어가는 카메라 모듈 만들죠.
LG디스플레이는 캐딜락 같은 럭셔리차 화면 만들죠.
LG유플러스는 전기차 충전 사업 하겠다고 얼마전 밝혔죠.
사업이 모두 전기차로 수렴을 합니다.
LG 사업들을 이렇게 죽 보면, 테슬라 처럼 전기차 브랜드만 안 달았지,
전기차 그냥 만들고 있다 이렇게 봐도 무방합니다.


그럼 또 이런 의문이 들 수 있죠.
'차라리 테슬라 처럼 전기차를 하지, 왜 부품만 만들고 있어?'
왜 안 하고 싶겠습니까.
운동화 만들면 나이키 되고 싶지, 나이키 하청 회사 되는 게 목표는 아니잖아요.
근데 아마 당분간은 테슬라 처럼은 안 할 것 같습니다.
이유는, 휴대폰 사업을 보면 알 수 있는데요.


LG전자가 2021년에 휴대폰 사업을 눈물을 머금고 접었잖아요.
이게 휴대폰 부품은 LG가 정말 너무 잘 만드는데,
그렇다고 애플 처럼은 절대 못 한다는 것을
자기들이 뼈져리게 느낀 거 같아요.
사실 애플 아이폰에도, LG 부품이 들어가 있죠.
LG는 '애플이 못 될 바엔, 애플 하청 잘 해서 아이폰 잘 팔리면 같이 이득을 보자'
이런 전략으로 선회를 이미 했습니다.


전기차 분야에서도 지금 GM 같은 자동차 회사와 협력을 많이 하고 있는데요,
GM이 미국 자동차 1등 기업이니까, GM이 전기차 잘 하면, 우리도 잘 된다,
또 GM 뿐 아니라 테슬라 같은 회사와도 협력해서
'GM이 안되면 다른 회사랑 잘 해서 전기차 시장 먹겠다'
이런 식으로 전략을 세운 것 같습니다.


사실은, 삼성이 이 대목에서 뼈아픈데요,
반도체를 엄청 잘 하고는 있긴 한데,
휴대폰, 스마트 워치, 노트북 등에서 애플과 서로 경쟁을 하다 보니까,
애플이 점점 삼성을 배제시키고, 대만의 tsmc 같은 삼성 경쟁사를 키워줬죠.
삼성이 휴대폰만 안 했으면 반도체 분야에서 이미 tsmc 누르고
세계 시장을 석권을 했을 것이란 말도 있습니다.
LG는 '삼성 처럼은 안 하겠다. 나이키 하청 내가 다 받아서 하다가 기회 엿봐서 나이키 먹겠다'
뭐 이런 식으로 전략을 짠 것 같죠.


전기차가 내연기관 차를 빠르게 대체해서
배터리가 반도체 이상으로 시장을 키우고
전기차 다른 부품들도휴대폰 부품보다 시장이 확 커지면,
LG가 삼성 제끼는 날도 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획 한경코리아마켓
총괄 조성근 부국장
진행 안재광 기자
촬영 김윤화·박지혜 PD
편집 김윤화 PD
제작 한국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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